1. 플로베르의 소설과 플롯의 도착성
1-1. 플로베르가 소설사의 전환점이 된 이유
플로베르의 작품은 19세기 소설의 전통적 플롯 구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며, 이를 통해 문학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한다.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도착적 특성은 기존 소설의 인과율과 목적론적 서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특히 발자크로 대표되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플롯 구조를 전복시키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플로베르는 『감정교육』에서 프레데릭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통적 교양소설의 성장 서사를 패러디한다. 주인공의 행적은 논리적 인과관계나 뚜렷한 목표를 향한 진보를 보여주지 않으며, 오히려 우연성과 반복에 의해 지배되는 양상을 보인다.
플로베르의 서사 전략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시간성의 처리 방식이다. 전통적 소설에서 시간은 주인공의 성장이나 사회적 성공을 향해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반면, 플로베르의 소설에서는 시간이 순환적이거나 정체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진보나 발전이라는 19세기적 가치관에 대한 회의를 표현한다.
사회사적 맥락에서 플로베르의 도착적 플롯 사용은 1848년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환멸과 좌절을 반영한다. 발자크식 성공 서사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플로베르는 기존 소설의 플롯 관습을 전복시킴으로써 새로운 문학적 현실성을 구축한다.
1-2. 전통적 플롯 사용의 도착적 특성
플로베르의 전통적 플롯 사용에서 나타나는 도착적 특성은 발자크의 소설 전통과의 대비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발자크의 소설에서 플롯은 인과관계의 명확한 연쇄를 통해 구성되며, 각 사건은 필연적으로 다음 사건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발자크식 플롯에서는 주인공의 욕망이 서사를 추동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며, 사회적 성공이나 실패라는 뚜렷한 결말을 향해 진행된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이러한 발자크식 플롯 구조를 의도적으로 전복시킨다. 『감정교육』에서 프레데릭의 행적은 발자크의 라스티냐크와 같은 상승 구조를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우연적이고 비체계적인 사건들의 나열로 구성된다. 플로베르는 발자크가 구축한 19세기 소설의 인과율을 해체하고, 목적론적 서사 구조를 파괴한다.
플로베르의 도착적 플롯 사용은 『인간희극』이 보여주는 총체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드러낸다. 발자크가 묘사하는 사회적 성공의 메커니즘, 야망의 실현 과정, 입신출세의 서사는 플로베르에 이르러 공허한 환상으로 전락한다. 데로리에라는 인물을 통해 플로베르는 발자크식 성공 서사의 공식을 패러디하며, 이러한 플롯 구조가 현실을 왜곡하고 단순화시키는 허구임을 폭로한다.
2. 시대의 반영
2-1. 1848년 사견
1848년의 프랑스는 이데올로기적 불확실성과 불일치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시기이다. 사회사적 맥락에서 이 시기는 프랑스 사회의 환멸과 좌절이 깊어지는 때이며, 이는 기존의 발자크식 성공 서사가 설득력을 잃게 되는 계기가 된다.
AI : 1848년 프랑스의 이데올로기적 불확실성과 불일치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이 시기의 특징은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1848년 혁명을 절정으로 다루면서 주인공의 역사와 교육 플롯이 작용하는 여러 시범적 요소들을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파리 상류사회의 작동 방식이 논리적으로 연결된 일련의 행동들을 통해 드러나며, 외교관들에게 상담해주는 코르티잔들, 계략으로 얻은 부자와의 결혼, 전과자들의 천재성 등이 묘사된다.
이 시기의 프랑스는 발자크가 『인간희극』에서 보여준 총체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전통적인 성공의 메커니즘과 입신출세의 서사가 공허한 환상으로 전락하는 시기이다. 특히 『감정교육』에서는 1848년 혁명과 그 여파가 제시한 역사 이용 방식이 기존의 소설적 실제와 대비되어 나타난다.
2-2. 사랑의 변화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서 사랑의 변화는 전통적인 로맨스 서사의 해체를 통해 드러난다. 주인공 프레데릭과 마담 아르누의 관계는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의 발전 구조를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정체되거나 퇴행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관계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면서, 완성이나 성취를 향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
소설에서 사랑은 더 이상 발자크적 의미의 사회적 상승이나 자아실현의 도구로 기능하지 않는다. 프레데릭의 사랑은 목적 없이 표류하며, 그의 감정은 마담 아르누, 로자네트, 마담 담브뢰즈 사이를 부유한다. 이러한 감정의 분산은 사랑이 더 이상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플로베르는 19세기 소설의 전통적인 사랑 서사가 지닌 허구성을 폭로한다. 낭만적 사랑의 이상은 현실의 물질성과 충돌하며, 순수한 감정의 가능성은 사회적 제약과 개인의 나약함 앞에서 좌절된다. 마담 아르누에 대한 프레데릭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체를 잃어가며, 결국 회상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랑의 변화는 사회구조의 변동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1848년 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의 이상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프레데릭의 사랑이 보여주는 방향성의 상실과 반복적 실패는 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반영한다.
3. 플로베르의 소설에 나타난 도착성
3-1. 플롯에 대한 관점 번복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플롯에 대한 관점 번복은 전통적 서사 구조의 해체를 통해 드러난다. 19세기 소설의 전형적인 플롯 구조가 목적론적 진보와 성장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플로베르는 이러한 구조를 의도적으로 전복한다. 그의 작품에서 사건들은 인과관계나 발전적 방향성을 상실한 채 단순히 나열되거나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감정교육』의 주인공 프레데릭이 보여주는 행적은 전통적인 교양소설의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그의 행동은 명확한 목표나 방향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오히려 우연성과 무의미성에 지배된다. 프레데릭의 열정과 야망은 실질적인 성취나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허공에서 발산되는데, 이는 마치 증기기관의 증기가 목적 없이 새어나가는 것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3-2. 야망의 부정
플로베르는 『감정교육』에서 야망의 허상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며 19세기 소설의 전통적인 성공 서사를 부정한다. 작품 속 인물들의 야망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공허한 반복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축한 서사적 전략의 일환이다. 프레데릭의 경우 파리 상류사회 진입이라는 야망을 품지만, 이는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무기력함과 우유부단함만을 부각시킨다.
소설의 구조 자체가 야망의 실현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전통적 소설에서 야망은 주인공의 성장과 사회적 성공을 추동하는 동력이었으나, 『감정교육』에서는 이러한 야망이 오히려 주인공의 정체와 퇴행을 초래한다. 프레데릭의 사회적 야망은 마담 아르누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점차 실체를 잃어간다.
3-3. 의미화의 만족 부인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은 의미화의 거부를 통해 전통적 소설의 해석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작품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서사적 의미 부여나 해석의 만족감을 제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의 공백과 부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프레데릭의 센 강 보트 여행 장면에서 드러나는 텅 빈 풍경과 권태의 묘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의 공허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화 거부는 작품의 구조적 측면에서도 확인된다. 전통적 소설에서 사건들은 일정한 의미 연관을 형성하며 해석 가능한 패턴을 만들어내지만, 『감정교육』에서는 사건들이 의미론적 연결고리를 상실한 채 단순히 나열되거나 반복된다. 작품은 독자들의 의미 부여 시도를 좌절시키며, 이는 19세기 소설의 전통적 해석 방식에 대한 근본적 도전을 구성한다.
플로베르는 작품 속 인물들의 행위나 사건들이 지닐 수 있는 상징적 의미마저 체계적으로 해체한다. 프레데릭의 실패한 사랑이나 좌절된 야망은 어떠한 교훈이나 깨달음으로도 승화되지 않으며, 단지 무의미한 반복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는 소설이 제공할 수 있는 의미화의 가능성 자체를 의문시하는 전략이다.
작품은 특히 독자들이 기대하는 서사적 만족감을 의도적으로 배반한다. 프레데릭의 여정은 어떠한 목적이나 성취로도 이어지지 않으며, 그의 경험들은 의미 있는 발전이나 깨달음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화의 거부는 19세기 소설의 전통적 서사 구조와 해석 방식에 대한 근본적 거부를 표현한다.
에밀 졸라의 1879년 12월 9일 <감정교육> 신판에 대하여 '자연주의 소설의 모범'으로 평가한다. 플로베르를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선구자로 본 것은, 역설적이게도 플로베르의 도착적 서사 전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플로베르의 작품이 보여주는 의미화 거부와 플롯의 해체는 오히려 전통적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적 재현을 넘어서는 현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3-4. 그럼에도 시간으로 가치를 만들다.
(오영주. (2006). 『감정교육』과 시간. 불어불문학연구, 65, 67-90.)
『감정교육』은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가며 긴장을 고조시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소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사건들 사이의 인과 관계가 흐릿해지고, 현실은 파편화된 채 병렬되어 제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교육』이 이야기가 완전히 해체된 소설이 아닌 이유는 소설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여러 장치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정교육』에는 유달리 시간을 나타내는 지표가 많다. 바로 이 지표를 통해 소설은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듯 앞으로 나아가고, 독자는 시간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병렬된 채 각기 고립적으로 놓여있는 사건들이 시간이라는 흐름에 의해 연결된다. 그런데 1848년 2월 혁명의 장면이나 퐁텐블로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 이 시간은 인간이 역사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시간이다.
프루스트가 『감정교육』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 3부 6장의 첫 부분, 17년의 세월이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제시된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덧없는 시간을 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부분은 소설 전체에 걸친 주인공 프레데릭의 시간체험을 요약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설은 시간의 축소뿐만 아니라, 단 하루 동안 일어난 기다림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기도 하는 등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 또한 뛰어나게 묘사한다. 그런데 극단적인 단축과 연장,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주인공의 이 두 가지 시간 체험은 결국 ‘기다림의 시간’, ‘비어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경험한 내용은 동일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4. 멜랑콜리의 역설(melancholy paradox)
4-1. 무엇이 이 소설의 책장을 넘기게 하는가
고전적 소설은 인간적인 것 안에 선험적인 것을 드러냈던 서사시나 드라마와 달리. 의미가 시간에 따른 분투와 전개의 과정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정교육』의 소설적 흡인력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의 전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동한다. 이는 소설이 의미의 진행과 해체를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적 구조를 통해 독자의 관심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프레데릭의 삶을 통해 목적론적 서사의 실패를 보여주면서도, 그 실패의 과정 자체를 하나의 의미 있는 서사로 구축한다.
작품의 서사적 전개는 표면적으로는 무의미한 사건들의 나열로 보이지만, 시간성의 독특한 처리를 통해 내적 연결성을 확보한다. 특히 시간의 압축과 확장이 교차하는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프레데릭의 시간 경험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간 경험의 재현은 소설의 핵심적인 서사 동력으로 작용한다.
플로베르의 서술 전략은 전통적 소설의 인과관계와 의미 부여 방식을 거부하면서도, 그 거부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서사적 긴장을 창출한다. 작품은 의미의 실현을 지속적으로 지연시키고 좌절시키는 방식으로 독자의 기대를 조절하며, 이러한 기대의 조절이 소설의 진행을 추동한다.
소설의 서사적 추진력은 또한 텍스트의 자기반영적 특성에서도 발생한다. 작품은 전통적 서사 형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면서, 그 성찰의 과정 자체를 하나의 서사로 구성한다. 이는 소설이 자신의 서사적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역설적 구조를 형성한다.
4-2. 실패의 성공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은 서사의 실패를 통해 성공에 이르는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소설은 주인공의 삶에서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을 집요하게 나열하면서, 전통적 성공 서사가 지닌 한계를 이야기 한다. 이러한 실패의 축적은 단순한 부정이 아닌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창출한다.
작품은 성공을 향한 진보적 서사 구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며, 이 과정에서 19세기 소설의 관습적 플롯을 전복시킨다. 프레데릭의 실패는 개인의 좌절을 넘어 당대 사회가 추구했던 발전과 진보의 신화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은 이러한 실패의 서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문학사적 성공을 거둔다.
[토의 내용]
설마..? 이 작품도..?
대사도 설명도 없이 진행되는 이 만화는 사기에 가까운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매번 죽다살아나고, 또 죽다살아나고를 반복하다가 끝난다.
그러다 갑자기 과거에 왜 지금의 세계가 만들어 졌는지 대사 없이 보여주다가. 다시 주인공이 강력한 적과 싸우다 간신히 이기고 살아남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작품과 『감정교육』의 전개 방식의 유사성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블래임은 각 플롯이 선형적으로 열거 되지만 플롯간의 연계성이 작품 후반에 독자의 추리력으로 해소되게 만든 것(?) 같다.